20대가 사라졌다는 말에, 문득 생각이 들어 트랙백을 시도한다.
20대에게는 결코 낭만이 없다.
나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20대들은 IMF를 보고 자라왔다.
부모님의 명퇴를 보아 왔고, 수많은 사업가들이 서울역에 주저앉은 것을 보아왔다.
살기가 어려다는 것을 느껴왔다.
우리 20대가 보고 배운것은
바로 그런 사회의 잔인함이었다.
하지만 이 사회의 잔인함 앞에서 당당히 맞서는 사람.
이 사회의 잔인함 앞에서 당당히 소리치는 사람을
우리 20대는 본적이 없다.
오히려 모두가 20대에게 말한다.
까불지 말라고. 사회는 원래 그런거라고.
두발자유를 외치는 청소년에게, 종교자유를 외치는 청소년에게
도대체 그들보다 나이가 많다던 세대들은 무엇을 도와주었는가?
이런 사회에 순응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말할 뿐이었다.
우리 전 세대는 우리에게 깊은 절망만을 남겨주었고
승리의 방법으로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확고화 되어가고 있다.
내가 05학번인데, 점점 학번이 06, 07로 내려갈수록
아이들은 더욱더 취업걱정이 심해진다.
학교의 취업스쿨화도 점점더 거세진다.
현실이 어렵다.
하지만 그 현실에 저항하는 법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두가지는 바로 우리의 전세대가 만들었다.
아니, 전세대들 또한 똑같이 속아왔다.
신자유주의란 물결에, 결국 둘다 다를바 없는 여야의 싸움에.
우리가 일군 민주화를 다 가져다 바쳤다.
하지만, 분명 상황은 이렇더라도 20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희망을 나는 여러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다.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아이들.
남들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는 아이들.
아직은 자기 취업걱정이 앞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들이 아플때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아이들.
전세대의 눈으로 본 우리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같은 20대의 눈으로 본 20대는, 아직 일어나지 못했을뿐 쌩쌩하다.
참, 언제나 급히쓰는 글 치곤 논리 정연한 글이 나오긴 힘든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저말이 정말 하고 싶었다.
20대에게는 결코 낭만이 없다.
나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20대들은 IMF를 보고 자라왔다.
부모님의 명퇴를 보아 왔고, 수많은 사업가들이 서울역에 주저앉은 것을 보아왔다.
살기가 어려다는 것을 느껴왔다.
우리 20대가 보고 배운것은
바로 그런 사회의 잔인함이었다.
하지만 이 사회의 잔인함 앞에서 당당히 맞서는 사람.
이 사회의 잔인함 앞에서 당당히 소리치는 사람을
우리 20대는 본적이 없다.
오히려 모두가 20대에게 말한다.
까불지 말라고. 사회는 원래 그런거라고.
두발자유를 외치는 청소년에게, 종교자유를 외치는 청소년에게
도대체 그들보다 나이가 많다던 세대들은 무엇을 도와주었는가?
이런 사회에 순응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말할 뿐이었다.
우리 전 세대는 우리에게 깊은 절망만을 남겨주었고
승리의 방법으로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확고화 되어가고 있다.
내가 05학번인데, 점점 학번이 06, 07로 내려갈수록
아이들은 더욱더 취업걱정이 심해진다.
학교의 취업스쿨화도 점점더 거세진다.
현실이 어렵다.
하지만 그 현실에 저항하는 법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두가지는 바로 우리의 전세대가 만들었다.
아니, 전세대들 또한 똑같이 속아왔다.
신자유주의란 물결에, 결국 둘다 다를바 없는 여야의 싸움에.
우리가 일군 민주화를 다 가져다 바쳤다.
하지만, 분명 상황은 이렇더라도 20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희망을 나는 여러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다.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아이들.
남들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는 아이들.
아직은 자기 취업걱정이 앞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들이 아플때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아이들.
전세대의 눈으로 본 우리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같은 20대의 눈으로 본 20대는, 아직 일어나지 못했을뿐 쌩쌩하다.
참, 언제나 급히쓰는 글 치곤 논리 정연한 글이 나오긴 힘든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저말이 정말 하고 싶었다.